사진창고/가족사진

[스크랩] 어머니와 나들이(07.5.22)

나무소리 2007. 5. 23. 14:51

 

 

아침 출근 기차.

청주역을 출발해 옥산과 오창뜰을 지나다보니

모내기가 반쯤은 진행이 되고 한적한 농촌 풍경이 아름답다.

 

그러면서 늘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함께 같은 지붕아래서 살아가지만 잠깐씩 얼굴만 뵐 뿐

답답한 도시생활이 창살없는 감옥으로 느껴질텐데

이런 전원적인 풍경이 얼마나 보고싶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근무가 되질 않아 출근시간보다 서너시간 먼저 퇴근해

어머니를 모시고 대청댐으로 간다.

 

문의파출소 앞 공원에 도착해 댐을 보며 걸으시면서

"어, 찔레꽃이 참 좋다"

"어, 아카시아도 엄창에 케(커)"

"지금은 풀도 엄쳉 마네..."하시더니

 

대청댐을 보시고는

"물도 엄창 마네(많네)"

"참 잘도 해놨다"를 연발하신다.

 

어머니의 사진을 몇장 찍어드리고

핸드폰에도 사진을 담아 바탕화면으로 깔아놓는다.

 

차를 이동해 대청댐 휴게소를 한바퀴 돌다가

벤취에 앉아 제비새끼처럼 재잘대는 아가씨가 있어

사진한장을 부탁하니 어찌나 환하고 이쁘게 웃는지...

 

"너무 보기 좋아요"하며

환한 얼굴로 사진을 찍어주는데 물컹 눈물이 쏟아진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의 눈물이.....

 

 

옛날 어머니가 태어났던 고향을 찾으니 옛 흔적은 이미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도시화가 덜 된 시골 옛동네..

 

행정구역이 어찌되는지 모르지만 그냥 내어머니는 [소목골]이라고 하시는데

아주 어릴 적 기억이었지만 집이 세채있었던 걸로 기억되기에

"어머니 여기 집이 시(세)채였지유"

 

난 내어머니와 얘기할 때 숫자는 늘 사투리를 쓴다.

셋이라는 말보다는 싯이라는 말이 더 정감있고,

내 어머니가 나를 대견스런 아들로 여겨줄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려, 시채였지.

 어~, 여기 논이 얼마나 존데.

 마늘 농사를 져두 마늘이 얼마나 잘되는디..."

 

동네 구경을 마치고 식당 [성남집]에 들어서니

행여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여기가 옛날에는 소목골였는디....."

 

식당 주인 아줌마가 모질게 말을 잘라버린다.

"우린 객지에서 여기 와 그런거 몰라유"

(에이~~ 싸가지 하고는 어른 말씀하시는데......)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 문의면을 보고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저가 장터지?"

"예.. 지금이야 장이 스나... "

"에~~! 엄청 커졌네...."

 

효촌삼거리를 지나오는데 논에는 모내기가 반쯤 이뤄져있다.

"여(기)가 남들아녀?"

"좀 더 가야혀유,.. 근데 남들도 지금은 전부 아파트가 들어섰어유"

 

미평동 개스충전소에 들러 개스를 보충하는데

"까쓰값이 지(기)름보다 즉게드나?"

"반값베끼 안들어유"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니 집에 도착한다.

 

신권 1,000원권과 만원권을 합해 작지만 용돈을 드리니

쓸데도 없는데 라면서도 잘 갈무리하신다.

 

저 돈은 능력이 없이 늘 일을 저지르는 큰 아들(내겐 형님)에게 주기 위해

한푼씩 모으는 것이려니.......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내일 석가탄신일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을 찾아야겠다.

출처 : 어머니와 나들이(07.5.22)
글쓴이 : 쉴만한물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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