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똥을 누며 드리는 기도...

나무소리 2006. 1. 9. 14:12

하느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밥상에 앉아 생명의 밥이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며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오늘 이 아침에

뒷간에 홀로 앉아 똥을 눌 때에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 뒷구멍으로 나오는 것이 오니

오늘 내가 눈 똥을 보고 어제 내가 먹은 것을 반성하게 하옵시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지는 않았는지,

일용할 양식 이외에 불필요한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이기와 탐욕에 물든 것을 먹은 것은 없는지,

오늘 내가 눈 똥을 보고 어제 내가 먹은 것을 묵상하게 하옵소서.

 

뒷간에 홀로 앉아 똥을 누는 시간은 내 몸을 비워

바람이 통하게 하고 물이 흐르게 하고

그래서 하느님 당신으로 흐르게 하는 시간임을 알게 하소서.

 

오늘 똥을 누지 않으면 내일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음에

오늘 나는 온 힘을 다해 이슬방울 떨구며,

온 정성을 다해 어제 내 입으로 들어간 것들을 반성하며 똥을 눕니다.

 

오늘 내가 눈 똥이 잘 썩어 내일의 양식이 되게 하시고,

오늘 내가 눈 똥이 허튼 곳에 뿌려져

대지를 오염시키고 물을 더럽히지 않게 하옵소서.

 

하느님,

오늘 내가 눈 똥이 굵고 노랗고 길면

어제 내가 하느님의 뜻대로 잘 살았구나,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오늘도 그렇게 살아야지 감사하며

뒷간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게 하옵소서.

 

**고진하님의 [이 아침 한줌 보석을 너에게 주고 싶구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