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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어느 노배우의 마지막연기 관람후기

나무소리 2008. 5. 26. 12:00

제  목 :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관람일 : 2008. 5. 21(수).

공연장 : 열린공간 [문]


이 연극을 보면서 문득 정호승 시인의 [술한잔]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연극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세계적인 가수였다가

이젠 마약중독자가 돼 길거리를 떠도는 [휘드니 휴스턴]이 생각나기도 했다.


살아가는 일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등 떼밀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조연들의 삶.

특히 나이가 들어 삶의 현장에서 한발짝 물러난 이들은 더욱 그렇다.


주인공 ‘서일’은 젊은 시절 악극단을 따라다니면서 신파극 무대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조연역할 만하다가 은퇴라기보다는

뒷전으로 밀려나 지난날의 연극대본이나 읽으면서 생활한다.


나름대로 원로 배우라고 자위하면서 품위를 지키려하면서도

현재의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와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를 인식하고

늘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등 떠밀려 살아지는 삶.


결혼식 주례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행복해하다가 취소되는 아픔.

시장댁과의 만남 속에서 김밥을 말아야 하는 일.

원로배우로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과, 상을 반납하게 되는 과정.

방송 대담 프로에 초청되지만 “막걸리”라는 한마디로 끝나게 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등 떠밀린 삶.

이건 비단 [서일]이라는 주인공에게만이 아니라

이미 권위나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진 현대의 우리 부모의 삶은 아닌지......


“늙으면 찾아주는 사람도 없다니까”라는 독백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20년 쯤 후의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내게 되뇌일

하나의 내 쓸쓸한 나의 고백일지도 모른다.


연극계의 공로상 수상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가

“연극한 것을 후회하진 않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후회? 후회하면 뭐해. 인생말년엔 다 후회하기 마련인데......

이 일은 결국 내가 택한 일이야. 그렇다면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인생이 끝날 때까지 이일은 내가 해야지“


그렇다 우린 우리에게 스스로 주어진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비록 후회를 하고, 삶이 조금 초라할지라도......


그 문화부 기자는 계속 [서일]에게 이렇게 질타를 가한다.

“스스로를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모두 나를 초라하게 본다고 나까지 그러면 더 비참해지지 않겠나?”

라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핑돈다.

누가 뭐래도 내 추억과 내 삶은, 내가 소중히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것을......


연극이 끝나간다.

그 즈음 그는 이런 독백을 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사는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우들 입니다.

배우들은 때가 되면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이 되는 것이 상식입니다.

나도 벌써 관객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서 있으니......“


연극이 끝났을 때

옆에 있는 관객과 눈이 마주치면서 괜스레 멋쩍고,

좀 답답한 내일의 내 모습을 바라본 느낌에

목구멍엔 팍팍한 건빵을 한입 씹고 있는 갈증에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나를 사랑한 사람들, 나를 외면한 사람들,

그리고, 관객 여러분 모두 안녕히 가십시오.“

다시금 나를 한번이라도 기억해달라는 절규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