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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

나무소리 2006. 6. 9. 15:50
                     상실의 시대 (원제:노르웨이의 숲)

                                                               글쓴이 : 무라카미 하루키

                                                               번  역 : 유유정 옮김


1.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것뿐이었다.

2. 죽음은 삶의 반대편 저쪽에 있는 존재 따위가 아니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열일곱 살의 5월 어느 날 밤에 기즈키를 잡아간 죽음은 그때  동시에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3. 스무 살이 되다니 어쩐지 바보 같애. 난 스무 살이 될 준비 같은 건, 전혀 안 돼 있었어.    

   묘한 기분이야, 어쩐지 누군가에 의해 뒤에서 무리하게 떠밀려 온 것만 같다니까.

4.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하게 돼. 비참할 뿐이지. 예쁜 여자가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과 같거든.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릴 해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게 내 세계였던 거야. 지난해까지 6년간이나.”

5. 세상에서 축축한 브레이지어를 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은 없을 거야

6.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란 게 지극히 하찮은, 혹은 시시한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거기서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거지.”

7. 게임을 하면서 주위를 보고 있자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일그러져 보이는 거야.

  어느 날 담당의사에게 그 말을 했더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옳다고 했어.    그는 우리들이 이곳에 와 있는 건, 그 비뚤어진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뚤어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고 했지. 우리들의 문제점중 하나는, 그 비뚤어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있다는 거야. (중략) 그것을 고치려 해도 갑자기 고쳐지는 것이 아니며, 무리하게 고치려 들면 다른 데가 이상해진다는 거야.

8. “영어의 가정법 현재와 가정법 과거에 관할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있어?

    그런 게 일상 생활 속에서 무슨 도움이 되지?”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런 게 사물을 더욱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훈련이 된다고 나는 생각해”

  “나는 지금까지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가정법이니 미분이니 화학 기호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래서 죽 무시해 왔거든, 그런 골치 아픈 것 들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잘못된 걸까?”

   “무시해 왔다고? 그런데도 용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엘 들어갈 수 있었군?”

   “와다나베는 바보야. 왜 그걸 몰라? 눈치만 빠르면 아무것도 몰라도 대학 시험 같은 건 거뜬히 치를 수 있쟎아. 난 감으로 알 수 있으니까. 다음 세가지 중 옳은 것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대뜸 알아내거든”

   “나는 너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체계적인 사고 방식을 익힐 필요가 있지. 까마귀가 나무 구멍에 유리 조각을 모아두는 것처럼 말야.”

   “그런 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글쎄, 어떤 종류의 일은 하기 쉬워지겠지. 이를테면 형이상학적 사고나 몇 개 국어를 습득하는 일 같은 거 말야”

   “그게 무슨 쓸모가 있는데?”

   “그건 사람 나름이겠지. 쓸모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쓸모 없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훈련이고.,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음 문제야. 처음에도 말한 것처럼 말야.”(276-278)


10. “때때로 나는 이 세상을 둘러보면 정말 한심해져. 어째서 이 사람들은 노력을 안할까, 왜 노력을 않고 불평만 할까하고 말야”

    “내 눈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악착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그건 노력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일뿐이야. 내가 말하려는 노력이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좀더 주체적이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걸 말해”

    “이를테면 다들 취직이 결정되어 한숨 놓고 있을 때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한다든가 그런 거 말인가요?”

    “그래”(314쪽)

11. “생리가 시작되면 2.3일 동안 빨간 모자를 쓸게. 그럼 알 수 있잖아? 내가 빨간 모자를 쓰고 있으면 길에서 만나도 못 본 척 도망가면 돼”

    “차라리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그래 주면 좋을 텐데”

12.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스킷 통에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걸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383쪽)

13.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제일이야. 희망을 잃지 말고 엉킨 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거지.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실마리는 어딘가에 있게 마련이니까. 주위가 어두우면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듯이 말이야.(392쪽)

15. 죽음이란 삶을 결말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거기서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412쪽)

16.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만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413쪽)

17.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44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