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펌] 첫사랑 / 허의행

나무소리 2023. 8. 3. 08:39

“어엿한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 나의 첫사랑 여자는 부끄러움도 없었다”

첫사랑 / 허의행

  첫사랑의 여자가 있었다 짐승처럼 나만을 사랑해 주었다. 어엿한 젊고 잘 생긴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 나의 첫사랑 여자는 부끄러움도 없었다.

  남편이 밤낮으로 사랑해주는데도 서툴고 미숙했던 내가 해주는 사랑을 남편의 능숙한 사랑보다 더 좋아했으며 순수한 사랑이라고 했다 

  남편과의 사랑은 껍질만 남아 있다고 속삭였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죽을 수는 없어도 내가 죽으면 따라서 죽는다고 약속했었다 

  첫사랑 여자와 입도 맞추었고 옷을 헤집고 젖도 만지고 밤새도록 안아주어야 잠을 잤다 한 때는 첫사랑 여자가 없으면 나도 죽는다고 다짐했었다 

  첫사랑 여자보다 젊고 예쁜 여자의 매력을 느낄 줄 알면서부터 나는 첫사랑 여자를 미워했으며 젊고 예쁜 여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보기도 싫게 늙어만 가는 첫사랑 여자는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나에게 끝까지 집착했었다 그 여자가 첫사랑의 여자

나의 어머니! 어머니이시다! 

* 첫 행부터 이 시는 매우 선정적이다. “짐승처럼 나만을 사랑해 주는 첫사랑", “어엿한 젊고 잘 생긴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 나의 첫사랑 여자는 부끄러움도 없었다”라고 말하며 독자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한다.

  “옷을 헤집고 젖도 만지고 밤새도록 안아주어야 잠을 잤다”라고 표현한 부분에 가서는 성과 욕망의 대상뿐인 여자의 젖가슴을 상상하면서 얼굴이 화끈 붉어졌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첫사랑의 여자가 어머니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부끄러움과 허허로움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으리라.

어머니와 여자와 우주와 존재! 그 엄정한 것이 구분이 되지 않을 때, 세상은 천박해지고 만다. 배고프고 등 따실 땐 까맣게 잊고 지내다 힘들 때면 문득 떠오르는 우리들의 ‘어머니! 어머니시다!

  보다시피 이 시는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특징이다. 모성애의 숭고함을 노래한 시는 많이 있지만, 이 시처럼 마지막 반전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감동을 획득한 경우는 드물다.

“첫사랑의 여자”가 “어머니”라는 반전, 여기까지 독자들을 데리고 오는 과정이 재미가 넘친다. 마지막 반전을 숨기고 최대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게 요령이라면 요령이요. 반전을 통해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뒤집기의 솜씨가 놀랍다.

이 시는 내용이나 표현이나 가릴 것 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시의 힘은 여기서 생긴다. 긴장이 없으면 짧은 글은 어디에서 힘을 얻겠는가.
  또한 이 시는 다르게 쓰기의 탁월한 방법을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것인가’라고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쓸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다르게 쓰기 위해서는 다르게 보는 방법을 가져야 한다.

  다르게 보는 방법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뒤집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뒤집기는 상식을 뒤엎는 질문을 통해 시작한다. 고정관념, 상식을 버리고 무조건 뒤집어 생각해야 한다.
꽃이 아름답다는 고정관념, 똥이 더럽다는 고정관념, 섹스는 추하다라는 고정관념, 밤이 어둡다는 고정관념, 모성애가 숭고하다라는 고정관념, 윤리적인 삶이 바람직하다라는 고정관념. 미추와 선악, 몸과 정신을 뒤바꿔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에 인생의 진실이 숨어 있다.
  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 주변의 자잘한 사건들에서 시는 찾아온다. 밥하고 빨래하고, 부부싸움하고 자식을 꾸짖는 일, 시장 보는 일과 잔치와 상가를 찾는 일, 다투고 시기하고 증오하는 이웃과 친구들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우리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 글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강의록을 일부분 참고하였습니다.